
‘사회적 경제’란 용어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자본주의의 확장으로 수많은 이들이 빈곤에 빠져 있었고, 빈곤에서 벗어날 목적으로 평등하게 협동하는 것을 ‘사회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의 ‘사회적’은 나를 위하는 우리의 협동이었다. 그 성과로 유럽 전역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경제 조직이 태동했다. 이렇게 태동한 ‘사회적 경제’는 1970년대 후반 들어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인류를 풍족하게 만들어 준 자본주의는 자본의 증식과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해오다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많은 국가는 저금리·저인플레이션·저성장이라는 3저의 늪에 빠져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각종 소비 진작책과 경기부양책, 출산장려정책 등을 내놓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이다. 이런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으로 사회적 경제에 거는 기대도 높다.
우리 나라도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제정하며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적 경제’가 눈에 띄게 성장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에서도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 공동체 복원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기치로 각종 법규와 제도도 정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오해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를 ‘사회주의경제’, ‘공익경제’로 이해한다.
정부나 정치권에서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정말로 사회적 경제는 공익을 위한 경제일까요? 아니면 이런 정부나 정치권을 비판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사회주의경제의 변종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상반돼 보이는 이 두 견해가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말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이 두 견해 사이에는 시장경제의 실패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인정하더라도 그 실패를 국가 경제가 보완하느냐 사회적 경제가 보완하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 국가 경제와 사회적 경제를 혼동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경제를 국가 경제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본문 中)
책에서는 사회적 경제의 궁극적 목적을 인간의 자유와 성장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때 말하는 인간은 모든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의 구성원을 의미한다. 다른 구성원과 함께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이 사회적 경제의 목적이지,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데 사회적 경제의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의 목적은 모두를 위한 공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사익과 공동이익의 추구에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명확히 해야만 그 안에 비로소 주체가 등장하고, 그 연장에서 ‘모두’를 위한 ‘우리’의 노력 또한 가능해진다고 전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공익성은 지향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경제'가 좀 더 힘있는 행보를 할 수 있는 방향을 이야기한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부족을 역사적·이념적인 측면에서부터 되짚어 설명하고 '사회적'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사회적 경제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원칙으로서 "주체의 확대", "영역의 확장", "지역사회의 창출"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제시하고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그간 논의되었던 우리 나라의 현상적인 '사회적경제'가 아닌 좀 더 근본적인 역사, 철학, 사례의 측면에서 '사회적경제'를 새롭게 바라본다.
김기섭 저자는 일본 고베대학 농업경제학박사이며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 연구활동가로 있다. 저서로는 ‘깨어나라! 협동조합-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정직한 노력’, ‘공동체탐구 – 유토피아에서 협동조합사회로’ 등이 있다.
[코스리 객원연구원 양지원]
‘사회적 경제’란 용어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자본주의의 확장으로 수많은 이들이 빈곤에 빠져 있었고, 빈곤에서 벗어날 목적으로 평등하게 협동하는 것을 ‘사회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의 ‘사회적’은 나를 위하는 우리의 협동이었다. 그 성과로 유럽 전역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경제 조직이 태동했다. 이렇게 태동한 ‘사회적 경제’는 1970년대 후반 들어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인류를 풍족하게 만들어 준 자본주의는 자본의 증식과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해오다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많은 국가는 저금리·저인플레이션·저성장이라는 3저의 늪에 빠져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각종 소비 진작책과 경기부양책, 출산장려정책 등을 내놓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이다. 이런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으로 사회적 경제에 거는 기대도 높다.
우리 나라도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제정하며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적 경제’가 눈에 띄게 성장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에서도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 공동체 복원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기치로 각종 법규와 제도도 정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오해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를 ‘사회주의경제’, ‘공익경제’로 이해한다.
정부나 정치권에서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정말로 사회적 경제는 공익을 위한 경제일까요? 아니면 이런 정부나 정치권을 비판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사회주의경제의 변종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상반돼 보이는 이 두 견해가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말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이 두 견해 사이에는 시장경제의 실패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인정하더라도 그 실패를 국가 경제가 보완하느냐 사회적 경제가 보완하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 국가 경제와 사회적 경제를 혼동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경제를 국가 경제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본문 中)
책에서는 사회적 경제의 궁극적 목적을 인간의 자유와 성장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때 말하는 인간은 모든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의 구성원을 의미한다. 다른 구성원과 함께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이 사회적 경제의 목적이지,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데 사회적 경제의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의 목적은 모두를 위한 공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사익과 공동이익의 추구에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명확히 해야만 그 안에 비로소 주체가 등장하고, 그 연장에서 ‘모두’를 위한 ‘우리’의 노력 또한 가능해진다고 전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공익성은 지향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경제'가 좀 더 힘있는 행보를 할 수 있는 방향을 이야기한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부족을 역사적·이념적인 측면에서부터 되짚어 설명하고 '사회적'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사회적 경제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원칙으로서 "주체의 확대", "영역의 확장", "지역사회의 창출"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제시하고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그간 논의되었던 우리 나라의 현상적인 '사회적경제'가 아닌 좀 더 근본적인 역사, 철학, 사례의 측면에서 '사회적경제'를 새롭게 바라본다.
김기섭 저자는 일본 고베대학 농업경제학박사이며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 연구활동가로 있다. 저서로는 ‘깨어나라! 협동조합-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정직한 노력’, ‘공동체탐구 – 유토피아에서 협동조합사회로’ 등이 있다.
[코스리 객원연구원 양지원]